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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옹 리뷰 (고독, 관계, 구원의 서사 분석)

by dailynode 2025. 4. 23.

영화 레옹 관련 사진
레옹

 

뤽 베송 감독의 1994년 작품 ‘레옹(LEON: The Professional)’은 액션과 느와르, 그리고 정서적인 감정선이 절묘하게 결합된 영화로,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명작입니다. 단순히 킬러와 소녀의 이야기로 설명되기에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정서는 매우 깊고 복합적입니다. 고독한 한 남자와 상처받은 한 소녀의 만남은 단순한 보호와 의존을 넘어 서로의 존재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이야기로 발전합니다. 이 글에서는 레옹이 담고 있는 ‘고독’이라는 정서의 구조, 두 인물이 맺는 특별한 ‘관계성’, 그리고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구원의 서사’에 대해 깊이 있게 분석해 보겠습니다.

고독의 미학 – 말없는 킬러, 레옹의 내면

영화 ‘레옹’의 주인공 레옹은 프로페셔널한 청부살인업자입니다. 그는 뉴욕의 이탈리아 마피아 보스 토니의 지시에 따라 아무 감정 없이 목표를 제거하며 살아갑니다. 그가 사는 공간은 어두운 복도 끝에 위치한 작은 아파트이며, 그의 일상은 철저히 단조롭고 규칙적입니다. 우유를 마시고, 식물을 돌보며, 발코니의 햇살을 조심스럽게 피하는 그의 행동은, 세상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려는 철저한 고립을 의미합니다. 레옹은 타인과 거의 소통하지 않으며, 감정 표현도 극도로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는 일종의 생존 기계처럼 묘사되지만, 그 속에는 깊은 감정적 결핍과 상처가 숨어 있습니다. 과거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그는 명백히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한 인물이며,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독은 단지 외로움이나 슬픔으로 치환되지 않습니다. 레옹의 고독은 오히려 그가 가진 인격의 구조를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는 스스로의 삶을 통제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틸다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레옹의 일상에서 유일한 생명체는 ‘화분’입니다. 이 식물은 레옹이 돌보는 유일한 존재로, 영화에서 상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는 이 식물을 매일 같은 방식으로 관리하고, 어딜 가든 가지고 다니며, “이 친구는 뿌리가 없어. 나처럼.”이라는 대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간접적으로 묘사합니다. 뿌리 없는 삶, 정착하지 못하는 존재로서의 자신. 이 식물은 그의 외로움과 유랑성을 상징하며, 동시에 보호 본능의 투영 대상이 됩니다. 결국 레옹의 고독은 인간성의 결핍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 스스로를 닫아버린 결과입니다. 이 고독은 마틸다라는 존재를 통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하며, 감정의 결빙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매우 섬세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관객이 인물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공감하도록 유도합니다.

관계의 형성 – 마틸다와 레옹, 위태롭지만 순수한 연결

레옹과 마틸다의 관계는 ‘가장 비정상적인 만남에서 시작된 가장 순수한 관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틸다는 가족에게 학대받으며 살아가고 있고, 어린 나이에 감정적으로 성숙하지만, 동시에 위태로운 존재입니다. 그녀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레옹과 우연히 얽히게 되고, 가족이 경찰의 손에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을 계기로 레옹과 함께 살게 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동정에서 시작된 동거였지만, 점점 레옹은 마틸다의 밝음과 호기심, 감정 표현에 영향을 받으며 점차 변화합니다. 이 둘의 관계는 일반적인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라기보다는,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방식으로 진화합니다. 레옹은 감정을 잊고 살았던 남자였고, 마틸다는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소녀였습니다. 마틸다는 처음엔 레옹에게 자신에게 킬러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합니다. 복수를 위해, 나아가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녀의 이 행동은 자칫하면 단순한 폭력성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내면에는 ‘무시당하지 않기 위한 자립 욕구’가 담겨 있습니다. 마틸다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희생당하지 않기를 원하며, 누군가에게 보호받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레옹은 처음엔 이를 거부하지만, 결국 마틸다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본능을 다시 자각하게 됩니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그녀의 웃음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극도로 분노합니다. 이는 레옹이 다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는 단지 킬러가 아니라, 관계를 맺고, 책임지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둘의 관계는 논란의 여지를 남깁니다. 나이 차이, 성적 긴장감, 복수라는 위험 요소 등.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문제를 감정적으로 매우 섬세하게 처리하며, 이들의 유대가 순수한 감정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합니다. 마틸다는 레옹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연애 감정’으로만 해석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지지해준 존재에 대한 사랑이며, 레옹 역시 마틸다를 가족 이상으로 아끼고 보호합니다. 이 관계는 단순한 감정선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통해 구원에 다가가는 서사 구조로 작동합니다. 상처입은 두 존재가 서로에게 다가가는 방식은 다소 거칠고, 때로는 미숙하지만, 그 감정은 영화 내내 가장 진실되고 따뜻한 정서로 전달됩니다.

구원의 서사 – 희생을 통해 완성된 감정의 회복

영화 ‘레옹’은 구조적으로 보면 복수극, 액션물, 느와르 장르의 문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구원’이라는 명확한 테마가 존재합니다. 이는 레옹이 단순한 킬러에서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존재로 변화하고, 결국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또 다른 삶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레옹은 마틸다를 통해 처음으로 ‘지킬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게 되었고, 그것은 곧 책임과 감정으로 이어집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인물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목숨을 건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변합니다. 영화 후반, 경찰과의 대치에서 레옹은 마틸다를 탈출시키고, 자신은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 과정은 슬프지만, 동시에 레옹에게는 가장 인간다운 순간이며, 그 순간 그는 처음으로 ‘진짜 삶’을 살게 됩니다. 마틸다는 레옹의 죽음 이후, 다시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식물은 레옹의 분신처럼 그녀의 품에 안겨 있으며, 그녀는 그것을 땅에 심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식재 행위가 아니라,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두 사람의 유일한 희망이 땅에 심기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레옹은 죽음을 맞았지만, 마틸다라는 존재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삶은 다시 뿌리내립니다. 이러한 구조는 구원의 고전적 서사와도 일치합니다. 한 사람의 희생은 또 다른 삶을 낳고, 그 삶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습니다. 마틸다는 레옹을 통해 사랑과 보호를 경험했고, 그 감정을 바탕으로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선택합니다. 이는 영화의 결말이 단순한 비극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결국 레옹은 마틸다를 통해 자신이 살았던 고독한 삶에서 벗어나고, 마틸다는 레옹을 통해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따뜻한 관계를 얻습니다. 이 상호작용은 단순한 관계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한 편의 치유 서사로 확장됩니다. 고통과 상실, 폭력과 외로움을 지나 결국 도달하는 이 ‘감정의 회복’이야말로 레옹이라는 영화가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레옹’은 킬러 영화라는 장르적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는 고독한 인간의 정서, 상처받은 영혼의 만남,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따뜻한 감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레옹과 마틸다가 보여주는 관계는 단순한 동정이나 보호의 차원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바꿔 놓은 진정한 만남이었습니다. 레옹은 자신의 생을 통해 한 소녀의 미래를 지켜냈고, 마틸다는 그 기억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 영화는 그렇게 우리 모두에게 묻습니다. “누군가에게 당신은 뿌리 내릴 수 있는 흙이 되어준 적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