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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가씨 리뷰 (속임수와 반전, 욕망과 금기, 자유와 해방)

by dailynode 2025. 4. 24.

영화 아가씨 사진
아가씨

박찬욱 감독의 2016년 작품 ‘아가씨(The Handmaiden)’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속임수와 반전, 욕망과 금기, 자유와 해방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치밀하게 엮어낸 심리 스릴러이자 감성 멜로입니다. 이 영화는 사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하되, 그 배경과 문화를 조선과 일본으로 옮겨와 동양적인 정서와 역사적 긴장감을 더합니다. 정교한 플롯과 파격적인 연출, 인물 간의 다층적인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과 심리, 그리고 억압과 해방의 서사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아가씨’는 단순한 영화적 재미를 넘어 관객에게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본 리뷰에서는 이 영화의 주제를 ‘속임수와 반전’, ‘욕망과 금기’, ‘자유와 해방’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분석합니다.

속임수와 반전 – 진실과 거짓 사이의 정교한 장막

‘아가씨’의 가장 돋보이는 장점 중 하나는 극도의 정교함으로 짜인 서사 구조와 반전입니다. 영화는 총 세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으며, 각 파트는 동일한 사건을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다시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인식 자체를 끊임없이 전복시킵니다. 처음에는 소매치기 출신 하녀 숙희가 귀족 아가씨 히데코를 속여 결혼 사기로 끌어들이는 이야기로 보이지만, 곧 이어지는 시점 전환은 진짜 속임수의 주체가 누구였는지를 근본적으로 뒤흔듭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과정을 단순한 플롯의 트릭으로 소비하지 않고, 인물의 심리와 관계 속에서 그 반전의 정당성을 구축합니다.

속임수는 이 영화에서 단지 줄거리 전개를 위한 장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대 여성들이 처했던 억압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이며, 생존의 기술이자 자아를 지키기 위한 방법입니다. 숙희는 히데코를 속이기 위해 접근했지만, 그녀와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결국 그 감정은 모든 계획을 무너뜨립니다. 반대로 히데코 역시 삼촌의 학대와 강압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선과 연기로 무장한 채 살아왔으며, 숙희를 통해 처음으로 ‘진짜 자신’이란 무엇인지 직면하게 됩니다. 이처럼 두 여성 모두 타인을 속이지만, 동시에 사회와 남성 중심 구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반전은 영화의 중반 이후 더욱 강력해집니다. 히데코가 정신병원에 보내려던 인물이 숙희가 아니라, 숙희가 보내려 했던 히데코였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관객은 서사의 전복을 다시 한 번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반전은 단지 ‘놀라움’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물 간의 감정과 심리적 전환을 드러내는 장치이며, 그 뒤에 놓인 억압과 연대의 서사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이와 같은 서사 구조는 관객에게 진실을 추리하게 만들고, 인물의 감정을 재해석하도록 유도하며, 감정적 몰입을 극대화합니다.

결국 ‘아가씨’에서 반전은 단순한 서사적 쾌감에 그치지 않고, 관객의 도덕적 판단과 감정적 위치까지 이동시키는 도구로 작용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처음에는 한 인물의 시선으로만 사건을 이해하게 만들다가, 뒤이어 다른 시선을 제시함으로써 그 판단을 흔들고 재구성하게 합니다. 이처럼 ‘속임수’와 ‘반전’은 단지 이야기의 기교가 아닌, 감정과 의미를 확장하는 철학적 장치로 기능하며, ‘아가씨’를 단순한 범죄극이나 로맨스를 넘어선 복합적인 심리극으로 완성시킵니다.

욕망과 금기 – 사랑인가, 죄인가

‘아가씨’는 무엇보다 욕망의 영화입니다. 그것은 성적 욕망뿐만 아니라 자유에 대한 욕망, 자아에 대한 욕망, 사랑에 대한 갈망을 포함합니다. 특히 두 여성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동성 간의 사랑이라는 금기된 감정을 영화의 핵심 테마로 설정하며, 시대적 배경과 억압 속에서도 욕망이 어떻게 발현되고 억눌리며, 궁극적으로 해방되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숙희는 처음 히데코를 속이기 위해 접근했지만, 그녀와의 관계 속에서 점차 진심 어린 감정을 품게 됩니다. 반면 히데코는 삼촌에게 성적 학대와 정신적 세뇌를 당해온 과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이 진짜인지조차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녀에게 숙희는 처음으로 자신을 ‘욕망의 대상’이 아닌, ‘인간’으로 바라봐주는 존재였고, 그 감정은 두 사람 모두에게 치유이자 해방으로 작용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과정을 통해 성적 욕망과 사랑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감정이며, 사회적 금기와 도덕적 판단 이전에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합니다.

동시에 영화는 성적 묘사를 통해 욕망의 이중성과 사회적 위선을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히데코의 삼촌은 외설적인 서적을 집필하고 낭독회를 열면서도, 그것을 ‘예술’ 혹은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합니다. 그 속에서 여성을 도구화하고 대상화하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문명화된 양 숨기려 합니다. 그러나 숙희와 히데코의 관계는 그러한 위선과는 달리 진정성 있는 교감과 감정의 교환으로 이루어지며, 오히려 그들의 욕망이야말로 인간적이고 순수하게 그려집니다. 이 대비는 영화의 도덕적 축을 명확히 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누가 더 ‘비정상’인지 되묻게 만듭니다.

결국 ‘아가씨’에서 욕망은 죄가 아닙니다. 오히려 죄는 타인의 욕망을 억압하고, 왜곡하며, 도구화하는 행위에 있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관점을 시각적으로도 풍부하게 표현합니다. 여성의 몸은 남성의 시선이 아닌 여성 자신의 시선에서 촬영되며, 이는 성적 장면을 대상화가 아닌 해방의 도구로 전환시킵니다. 두 여성의 교감은 사랑의 표현이자 자기 회복의 행위이며, 그것은 기존의 남성 중심적 서사에서 보기 힘든 파격적이면서도 정당한 접근입니다.

자유와 해방 – 억압의 세계에서 벗어나다

‘아가씨’의 세 번째 테마는 자유와 해방입니다. 이는 단순히 공간적 탈출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의 해방은 자아로부터의 회복, 감정의 정직한 표현, 타인과의 동등한 관계 회복 등을 포함하는 전면적 해방입니다. 히데코와 숙희는 삼촌이라는 가부장적 권위에 종속되어 살아가며, 그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는 단순한 ‘탈출극’이 아니라 자아 정체성의 선언이자 연대의 상징입니다.

히데코는 어릴 적부터 강제로 성적 낭독을 훈련받으며 자신의 몸과 언어를 모두 도구로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녀의 삶은 ‘읽는 것’과 ‘보여주는 것’으로만 규정되었고, 그 안에서 자율성은 철저히 박탈되었습니다. 숙희 또한 남성 중심 사회에서 하층민으로 자라면서 생존을 위해 속이고 훔쳐야 했습니다. 이 둘이 만났을 때, 그들은 서로의 거울이자 탈출구가 되었고, 그 관계 속에서 억압의 굴레를 자각하고 깨기 시작합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배를 타고 일본을 떠나는 두 여성의 모습은 영화 전체의 감정적 정점을 이룹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주체적인 해방’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배라는 공간은 과거를 끊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이행의 장소’이며, 이는 관객에게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장면에서 기존의 복수극이나 비극적 결말을 거부하고, 여성의 연대와 주체적 선택이 만들어낸 새로운 서사로 마무리합니다.

영화는 또한 해방이 단순히 남성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 안의 두려움, 죄책감, 정체성의 혼란에서도 벗어나야 했으며, 그 여정은 폭력과 위장, 연기를 통해 이뤄졌지만, 결국 진실된 감정과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이 과정은 영화의 가장 중요한 성취 중 하나로, 해방이란 단순한 외부 조건의 변화가 아니라, 내면의 수용과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미학적 완성도와 더불어, 강력한 주제의식과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낸 영화입니다. 속임수와 반전, 욕망과 금기, 자유와 해방이라는 키워드는 단순한 서사 장치가 아니라, 이 작품이 관객에게 던지는 철학적 질문이자 감정적 여운입니다. ‘아가씨’는 사랑이 어떻게 사회적 구조를 뛰어넘어 연대를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진정한 해방은 관계 속에서 탄생한다는 희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