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 출간된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 작은 아씨들(Little Women)은 겉보기에 평범한 가족 이야기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당대 여성들에게 요구되던 전통적 삶의 방식에 의문을 던지며, 여성이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특히 2019년 그레타 거윅 감독이 각색한 영화판은 현대 페미니즘적 시선에서 원작을 새롭게 재해석하며, 작품 속에 내포된 여성 주체성, 선택의 자유, 자기표현이라는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이 글에서는 작은 아씨들이 어떻게 시대를 초월해 여성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말해왔는지, 그 문학적 상징성과 진화 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조 마치라는 상징 – 문학 속 ‘여성 주체’의 등장과 투쟁
조 마치는 단순한 소설 속 인물을 넘어, 시대를 앞선 여성 페르소나로 상징되는 존재다. 당시 여성에게는 교육보다 결혼이 우선시되었고, 글쓰기나 자아실현은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되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한다. 그녀는 독서를 좋아하고 글을 쓰며, 외모보다는 생각을 중시하고, 결혼보다 자신의 직업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당시 사회의 보편적 여성상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명백한 페미니즘적 도전이었다.
조의 가장 큰 갈등은 바로 ‘타인의 시선과 자신의 내면’ 사이에서 발생한다. 가족의 기대, 여성으로서의 도덕적 규범, 출판사의 요구 등은 조에게 ‘좀 더 온순하고, 시장성이 있는 이야기’를 요구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굽히지 않는다. 2019년 영화판에서 출판사와의 계약 장면은 단순한 상업적 협상이 아니라, 여성 창작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현대적 서사로 기능한다.
더 나아가 조는 사랑조차도 선택의 문제로 본다. 로리의 청혼을 거절하는 장면은 단지 “남자를 거부했다”는 낭만적 설정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 독립적 삶의 지향, 그리고 감정의 진실성을 고수하려는 깊은 결단이다. 이 장면은 수세기 동안 여성의 가장 중요한 인생 목표로 간주되었던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문학적으로 처음 문제제기를 던진 전환점이기도 하다.
네 자매, 네 가지 여성의 삶 – 페미니즘의 다원적 구조
작은 아씨들의 강점 중 하나는 하나의 여성상만을 이상화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조의 독립성과 저항이 주목받는 반면, 메그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대변한다. 메그는 결혼과 가정을 중요하게 여기며, 가난하지만 성실한 남자와의 결혼에서 행복을 찾는다. 이는 당시 전통적 가치관을 그대로 수용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중요한 점은 그녀가 그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했다’는 데 있다. 메그의 삶 역시 여성 주체성의 한 형태인 것이다.
반면 베스는 극도로 내향적이고 타인의 돌봄을 기꺼이 감내하는 인물이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결국 병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녀는 비판적으로 보면 ‘희생적인 여성’의 전형이지만, 올컷은 그녀를 무기력한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베스는 가족 내에서 정서적 중심축이자 가장 순수한 인간관계를 구현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에이미는 다른 자매들과는 달리 ‘실용적 선택’을 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예술적 열망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적 성공에 대한 욕망도 강하다. 결국 유럽에서의 경험과 삶의 교훈을 바탕으로 ‘현실과 이상 사이의 절충점’을 찾아간다. 그녀의 성장과 판단은 감정보다 이성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는 한편으로는 ‘사회적 성공도 여성의 권리’라는 새로운 담론을 열어준다.
이처럼 작은 아씨들은 한 가지의 이상적인 여성상을 강요하지 않는다. 각기 다른 자매들의 선택과 감정, 가치관은 모두 동등한 존중을 받는다. 이는 페미니즘의 본질이 단일한 여성상을 이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방식이 모두 존중받아야 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시대와의 대화 – 고전 속 여성 서사의 현대적 재해석
루이자 메이 올컷이 작은 아씨들을 발표한 19세기 미국은 여성의 참정권조차 인정되지 않았던 시기다. 여성의 역할은 철저히 가정에 한정되어 있었고, 교육과 사회적 진출의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글을 쓰는 여성’, ‘결혼을 거부하는 여성’, ‘경제적 자립을 원하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작품은 그 자체로 혁명적이었다.
하지만 이 고전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한 ‘시대 초월성’ 때문만이 아니다. 작은 아씨들은 매 시대마다 ‘새로운 여성의 조건’을 담아내며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왔다. 특히 그레타 거윅 감독이 연출한 2019년 영화는 원작의 서사를 그대로 따르면서도, 인물들의 감정과 선택의 배경을 보다 직설적이고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이야기의 주도권’이다. 영화 후반, 조는 자신이 쓴 소설을 출판사와 협상하며 “이 이야기는 나와 내 자매들의 이야기이고, 그 누구도 이를 바꿀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서사 구조가 아니라, 여성의 경험과 서사가 시장 중심의 구조 속에서 ‘주체적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강력한 선언이다.
또한 영화는 에이미의 입을 통해 ‘여성의 경제적 한계’에 대해서도 말한다. 에이미는 “여성은 부자가 되지 않는 한 결혼이 곧 생존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페미니즘 문학 비평에서 오랫동안 다뤄진 문제이기도 하다. 즉, ‘사랑’이 아닌 ‘생존’을 위한 결혼이라는 현실은 지금도 많은 여성들에게 유효한 고민이자 현실인 것이다.
작은 아씨들은 단순한 성장 소설도, 고전 로맨스도 아니다. 이 작품은 여성의 삶을 한 가지 시선으로 규정하지 않고, 다양한 정체성과 선택을 존중하는 ‘페미니즘의 거울’로 기능해왔다. 조 마치를 통해 우리는 고정된 여성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고, 메그·베스·에이미를 통해 각기 다른 방식의 자기실현을 목격했다.
현대 사회는 여전히 수많은 여성에게 정해진 틀을 강요한다. 커리어냐 결혼이냐, 가족이냐 자아냐, 감성이냐 이성이냐. 그러나 작은 아씨들은 말한다.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 다만, 그 선택이 스스로의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다시 작은 아씨들을 읽고, 보며,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